봉(烽)화산 봉수대 아래(下)에 있어
유래한 이름 봉하(烽下)
어린 시절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에게 살아있고 아름다운 생태계를 물려주고 싶었던 대통령의 꿈
“봉화산, 봉하들판, 화포천을 중심으로 마을을 잘 가꾸어
생태 숲, 생태 농장, 생태 습지가 조화로운 생태마을을 만드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어린 시절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에게 살아있고 아름다운 생태계를 물려주고 싶었던 대통령의 꿈
“봉화산, 봉하들판, 화포천을 중심으로 마을을 잘 가꾸어
생태 숲, 생태 농장, 생태 습지가 조화로운 생태마을을 만드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봉하마을은 주호, 용성, 본산, 금봉, 봉하 등의 본산리 5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한다. 봉화산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린다.
봉화산에는 정토원이라는 절과 마애불이 있으며, 산 정상에는 마을 일대를 훤히 둘러볼 수 있는 사자바위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마을 근처와 진입로 쪽으로 다수의 공장이 형성돼 있으나, 봉하마을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쪽으로 형성된 봉화산과 마을 앞쪽의 뱀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포근한 농촌을 느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소년 시절에는 마을에서 진영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서 다녔다. 부산에 나가 공부한 고등학교 시절과 군 복무 시간을 제외하고, 신혼생활과 제대 후 고시공부도 마을에서 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도 봉하마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권양숙 여사는 어릴 때 마을로 이사 와서 성장했고, 후에 노 대통령과 백년가약을 맺어 고시 합격 뒤 새 출발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추억과 사랑을 쌓았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꽤 오래 이곳에 살던 분들이며, 노 대통령과 많은 인연과 추억을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사람사는세상’의 꿈을 안고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주민들과 오리쌀을 비롯한 친환경농업을 시작했고 마을을 찾는 분들의 농촌 체험을 위해 장군차도 심었다.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화포천에 나가 몸소 쓰레기를 치웠다.
노 대통령은 또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과 밤새워 토론하고 연구했다. 봉하마을의 산과 물, 흙과 돌 하나하나에는 ‘사람사는세상’을 향한 노무현의 꿈이 어려 있다.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봉분을 만들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다.
국민참여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너럭바위에는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기고, 박석 하나하나에 담긴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하게 하였다. 추모박석과 자연박석이 조화를 이루어 길과 내, 사람과 집이 어우러진 ‘사람사는세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2009년 8월 5일,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고향에 안장한 첫 사례로서 ‘국가보존묘지 1호’로 지정하였으며, 이후 박석, 곡장, 수반 등을 추가 설치하여 이듬해 5월 23일,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묘역 조성이 완료되었다.
마을을 비추는 거울,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곳
너럭바위를 앞에 두고 헌화와 분향, 참배를 하는 곳
지하의 안장 시설을 덮고 있는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바위
묘역과 자연의 경계를 구분하는 벽으로, 일정 기간 녹이 슬고 나면 보호막이 형성되어 부식을 막아주는 내후성 강판으로 제작
묘역 바닥에는 추모글이 새겨진 1만 5천여 개의 박석이 깔려 있다. 박석 기부에 참여한 1만 8천여 국민의 마음이 담긴 국민참여박석은 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를, 개개의 박석에 새겨진 글귀는 그 비문을 대신하고 있다.
자신의 박석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서 박석찾기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으며, 묘역 입구에서도 안내받을 수 있다.
"화장하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영결식 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 봉분 없는 납골묘 형태
태어난 곳(생가), 퇴임 후 생활한 곳(사저), 생을 마감한 곳(부엉이바위), 즐겨 다닌 등산로(봉화산), 퇴임 후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곳(봉하 들녘)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비석을 세우지 않고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한 너럭바위를 얹어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지관스님의 글씨로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김
비문 대신에 대통령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국민의 참여로 15,000개의 박석을 바닥에 설치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은 봉화산의 줄기가 마을과 만나는 어귀 자락에 있다.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앞으로 흐르는 이곳은 배산임수의 형국을 하는 전통적 길지이다. 기다란 삼각형의 부지는 가운데로 또한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르며 전체 영역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조선 왕릉 공간 형식의 입구 영역인 홍살문, 준비 영역인 정자각, 참배 영역인 능침과 같은 전례의 구성을 자연스럽게 이룬다. 삼각형의 부지인 까닭에 여러 행사 진행에도 적합한 제의적 형상이다. 묘역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경건한 영역이다. 일상적 공간이 아니므로 지상에서 1미터를 높여 일상을 떠난 월대(月臺)를 만들었다. 마치 종묘 정전의 마당 같은 절대적 비움의 공간이다. 이 비움이 경건하도록 설치물은 극히 절제된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바닥에는 박석을 깔고 전체 모양을 '사람사는세상'의 마을 배치로 그렸다. 멀리 위에서 보면, 이 속에 길도 있고 마당도 있으며 집도 있는 마을의 모습이다. 이 마을 속에 지나는 길로 표시된 부분을, 우리들의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새긴 박석으로 포장한다.
입구 부분에는 수반이 놓여 있다. 월대에 오르기 전 우리를 비추는 시작점이다. 여기서 여미고, 기다란 장대석으로 다듬은 계단을 오르면 한없이 고요한 평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완만한 경사로 된 공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우리로 사유의 여정을 이끄는 것이다.
첫 번째 물줄기를 지나면 가운데 헌화대가 놓여 있고 여기에 준비한 꽃을 내려놓고 건너편 지석에 모인 이들이 참배 마치기를 기다린다. 주변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간절함과 그리움의 글귀가 새겨진 박석이 마치 군중을 이룬 듯하다.
다시 물줄기를 건너 지석이 놓인 야트막한 언덕에 오른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새겨진 철판 위에 고운 지석이 놓여있으며 그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 검박한 글씨로 새겨져 있다. 저 뒤에는 이 영역을 한정하는 곡장이 드리워져 있고 이 철판의 벽은 시간에 따라 검붉게 녹슬어 가며 이 모든 기억을 담아 가둔다. 그 둘레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봉화산의 소나무와 합치되어 이 묘역과 완성된 풍경을 이룬다.
저 멀고 높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대통령이었으므로, 일상의 우리 모두 만날 수 있는 광장의 묘역이 그를 위해 적합할 것이다. 광장의 묘역, 이는 비움을 바탕으로 한다. 공간은 여러 행위에 열려 있으나, 이 비움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담는다. 비록, 우리의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바닥을 새겨 덮었지만, 이 광장을 찾는 무수한 발디딤으로 언젠가는 그 글씨도 닳아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어떤 영구불변을 꿈꾼 상징도 우리의 선한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그와 함께했다는 기억뿐이며 그것이 우리의 진실이 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유서에서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 달라는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편안한 너럭바위로 봉분으로 삼고 그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를 새기고, 받침대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어록 한 문장만 새겼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묘역에는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우리들의 뜻이 담긴 글과 기념물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아주 작은 비석'이라는 대통령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형태로 구상한 것이 박석 설치입니다. 대통령 묘역 전체에 작은 박석들을 바닥돌로 설치하면서 그 박석에는 추모 기간에 온 국민이 보여주었던 존경과 애도와 사모와 사랑의 글을 새겨 넣어 그 거대한 전체를 비문으로 대신하는 구성입니다.
이렇게 국민이 쓴 비문들로 이루어진 집체적 비석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만의 추모 기념물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박석 설치를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2009. 11.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추모공간위원회 유홍준 전 문화재관리청장)
박석(薄石, 博石)이란, 얇은 돌 또는 넓적한 돌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궁궐과 왕릉 건축에 사용한 바닥 포장돌입니다. 두께가 10cm, 가로세로가 약 20cm의 이 박석은 경복궁 근정전과 종료 앞뜰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단히 품위 있고 기능적입니다. 작은 박석은 자연스럽게 마치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면 아름다운 무늬로 될 수도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박석 설치가 완공되면 박석들이 어우러진 무늬는 '사람사는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그 전체의 형상은 묘역 뒤에 있는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아주 선명히 드러날 것이며 부엉이바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묘역 조성의 원리이기도 한 이 말은 백제 본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뜻이다.
경기 성남 백자가마(직경 30cm, 높이 25cm)
전북 익산 황등석(직경 50cm, 높이 50cm)
충남 보령 남포오석(가로 124cm, 세로 68cm, 높이 79cm)
강원 횡성
김해 화포천
전북 익산 황등석, 충남 보령 애석, 경기도 운천석, 황해도 해주 애석, 충남 부여석 등
하절기(3월~10월) 오전 8시 ~ 오후 7시|
동절기(11월~2월) 오전 8시 ~ 오후 6시
연중 휴장일이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묘역 운영/관리 사정에 따라 필요한 경우 휴장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의전 및 참배 절차 없이 헌화, 분향, 묵념 등 참배객의 자율적인 참배를 원칙으로 합니다.
묘역 내 시설 보호를 위해 아래와 같은 제한사항을 적용합니다.
매년 1월 1일
매년 5월 23일
수시
1946년 9월 1일 태어나 8살까지 살았던 집. 퇴임 당시 생가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원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김해시가 생가를 매입하지 못해 복원 사업이 난항을 겪자 대통령의 고교 친구가 직접 생가를 사서 김해시에 기부했고, 이후 생가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원될 생가의 설계 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 걸친 자문과 협의, 꼼꼼한 메모를 통해 직접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생가는 전통적인 초가집 형태로 약 36㎡(약 11평) 규모의 본채에 방 2칸과 부엌, 약 14㎡(약 4.5 평)인 아래채에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09년 9월 복원사업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오전 9시 ~ 오후 6시
김해시 문화관광안내소 T. 055-344-0660
1946년 9월 1일(음력 8월 6일)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 씨와 어머니 이순례 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8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2010년부터 대통령 생신 행사는 양력 9월 1일에 한다)
대통령은 6살 때 천자문을 외워 동네에서 ‘노천재’로 불리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를 잘해 ‘인사 잘하는 과수원집 막내’로 불렸다고 한다. 봉하마을에서는 생가를 포함해 네 군데 집에서 살았다. 1973년 권양숙 여사와 결혼했고, 마지막 집에 살 때 뱀산 중턱에 흙으로 된 ‘마옥당(磨玉堂)’을 짓고 고시 공부를 했으며,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부산으로 이사했다.
2008년 2월 대통령께서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때 생가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당시 생가 복원을 놓고 김해시와 논의했으나 매입비가 비싸 난항을 겪었다. 그러자 대통령 고교 친구가 직접 생가를 사서 김해시에 기부했고, 이후 생가쉼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8년 말까지, 복원될 생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여러 차례 생가의 원래 모습에 대해 자문했고 생가 복원이 어떻게 되면 좋을지 의견을 제시했다. 이때 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박제된 집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나는 집을 원했다. 살아 계셨으면 낮에는 가까운 사람들과 차도 한 잔 마시고, 밤에는 실제 자고 갈 수도 있는 집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2008년 말까지 철저한 고증과 자문을 통해 설계를 마무리했다. 2009년 2월 착공하여 7개월 만인 그해 9월에 완공했다. 대통령 생신인 9월 24일(음력 8월 6일) 생가쉼터 행사를 열고 일반에 공개했다.
기존 생가를 해체하던 중 2개의 상량문을 발견했는데, 그중 2개의 상량은 생가 복원 시 다시 사용했다. 생가는 전통적인 시골 초가집 형태로 11평 규모의 본채에는 방 2칸과 부엌이 있고, 4.5 평인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생가 건물 복원이 끝날 즈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문화재 전문가들과 함께 생가에 비치할 소품을 엄선하여 당시 생활상에 가장 가까운 소품들로 배치했다. 대부분 김해 인근 지역에서 직접 구한 소품이다.
생가는 ‘대통령의 삶이 시작된 곳’, 생가 복원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퇴임 뒤 돌아와서 일생을 마감한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대통령 기념사업의 시작’이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는 생가와 사저, 묘역을 중심으로 봉화산과 화포천, 봉하 들판 등 대통령 일생이 어우러져 있는 봉하마을을 잘 가꾸어, 찾아오신 분들이 대통령께서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가치와 철학, 업적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고 갈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쉼터찻집은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생가와 함께 지어진 곳이다. 당초에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작은 찻집으로 설계되었다.
서거 이후 대통령을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매장으로 바뀌었다가 2022년 5월 1일, 원래 취지를 살려 다시 찻집으로 문을 열었다. 묘역과 생가 관리를 맡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봉하재단)에서 운영하며, 판매수익금은 묘역과 생가 관리, 기념사업에 쓰이고 있다.
오전 9시 ~ 오후 6시
055-344-1005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생애, 가치와 철학을 소개하고 민주주의의 정원으로서 지역 주민과 함께 소통하고 호흡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대통령의 어록을 인용하여 이름을 붙인 전시관으로 2022년 9월 1일 개관했습니다. 2층에는 대통령의 서재와 어린이를 위한 작은쉼터, 기념품점 노란가게, 기획전시 공간이, 1층에는 노무현기념관과 다목적홀, 야외공연장이 있습니다. 다목적홀과 야외공연장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전시가 열리고, 시민들에게 대관도 가능합니다.
10:00 ~ 18:00 (매표 마감 17:00)
매주 월요일 (휴관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홈페이지(gimhae.go.kr/bonghamemorial) / 전화 1551-0225
1층 노무현기념관은 현대사 복도를 포함한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현대사와 노무현개인 사가 교차 전시된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만나서 그 자신 역사가 된 노무현과 한국 사회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으며, 생애 시기별로 나누어진 각각의 전시실에서는 노무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 순간을 ‘우람한 나무’라는 실감형 전시콘텐츠로 묘사한 6전시실과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성과를 다룬 7전시실에서 ‘대통령 노무현’을 만난다면, 8전시실에서는 고향마을로 돌아온 ’시민 노무현‘을 느낄 수 있습니다. 9, 10전시실에서는 ’인간 노무현‘의 마지막을 다루며, 다음 세대를 향한 당부를 육필 원고로 접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기록을 생활 속 다양한 물건에 담았습니다.
'내 마음속 대통령'의 추억을 일상 속에서 느끼고픈 사람들, '사람사는세상'을 향한 꿈과 의지를 내 이웃에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원하는 예쁘고 실용적인 소품과 옷, 책 등을 판매합니다.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 2F 로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과 동일
1551-0225
‘노무현대통령의집’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퇴임 후 2009년 서거 전까지 생활했던 공간이다. 생태 건축의 대가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흙,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하여 설계했으며 주변 산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린다.
귀향을 통해 참여정부 국정철학인 국가균형발전을 몸소 실천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 집에서 마을의 생태계와 공동체를 복원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일에 힘을 쏟으며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집’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2018년 5월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화~금] 3회, [토~일/공휴일] 11회, [화~일 14:00] 단체관람
매주 월요일(휴관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5월 22일~23일, 12월 31일~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홈페이지 예약 및 현장 신청(회당 25명), 전 회차 해설 관람
1551-0225
“ 대통령을 하는 동안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루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너무 집중되어 비좁으니까 지방으로 가자는 것인데, 앞장서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서울이 좋다고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지방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나도 갑니다!" 떳떳하게 말하고 싶었다. 부산 근처 경남 일대의 은퇴자 마을 카탈로그를 구해 보면서 살 곳을 찾았다. 여러 곳을 봤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2006년 3월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아내가 봉하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듣고 보니 고향을 두고 뭐 하러 다른 곳을 찾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해서 귀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 내가 고향에 돌아가 사는 것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중 -
귀향한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수차례 사저 개발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은 사저를 건축하는 초기 단계부터 사저의 장기적 활용 방안에 관한 계획을 염두에 뒀다.
대통령 서거 후 대통령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유가족이 사저 소유권을 노무현재단에 기부하였다. 현재 사저는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묘역, 생가, 기념관 등과 함께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무현 재단은 사적(史蹟) 또는 등록문화재 등 추후 문화재 등록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의 집을 운영관리 하고 있다.
대통령의집은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전까지 생활한 공간이다. 뒷산을 가리지 않고 자연환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린다. 서재, 안채, 사랑채 등 한국 전통 주거 양식인 ‘채 나눔’으로 설계했다. ‘언젠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서거 10주기인 2018년 5월에 맞춰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흙, 나무, 강판 등 자연소재만을 사용한 건축물이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도 경치를 보고, 바람을 쐬고, 새소리를 듣는 등 자연과 어울리는 생활을 하도록 설계하였다.
채 나눔 방식의 작은 공간들로 구성된 대통령의 집은 생활에는 불편하지만, 향후 사저를 사회에 환원하여 관람, 전시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절한 구조로 만들었다. 각 공간을 이동하는 복도는 지붕을 씌워 화랑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건축 설계상 지붕 면적은 설계 면적에 포함되므로 대통령의집은 실제 공간보다 큰 면적으로 책정되어 있다.
퇴임 대통령의 경호업무를 위한 경호동을 별도로 두지 않고 사저에 포함시켜 설계하였다. 전체적으로 건축설계 면적이 늘어나지만 대통령 업무공간과 가까이 두어 상호 업무 효율을 높이자는 대통령의 실용적인 뜻을 반영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
동고서저의 천장 설계는 풍광을 돋보이게 하고, 채광을 더욱 좋게 함
네 폭 병풍 느낌의 창문을 통해 사자바위 등 봉화산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음.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등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던 곳
故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사람사는세상'이 쓰인 액자가 걸려 있음
대통령 내외의 개인적인 생활공간으로 거실과 주방, 침실로 구분
거실에는 컴퓨터를 비롯해 생전 사용하시던 물품들을 그대로 보존
故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쓰인 액자와 원불교 종법사가 그린 '달마도' 가 걸려 있음
정원이 보이는 주방 유리창에는 손주들의 낙서가 남아 있음
현재에도 이곳에서 유족과 보좌진들이 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음
침실 앞 야외에는 대통령이 아침 식사 후 휴식을 취하던 나무 벤치가 보존되어 있음
민주주의 2.0 연구, 집필 회의 등 대통령이 주로 시간을 보내던 장소
서가에는 철학, 역사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도서 919권의 책이 꽂혀있음
비서실, 경호실 등 보좌진들의 업무공간으로 서재와 바로 붙어있음
보좌진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일하는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엿보이는 공간
상당수 기증받은 나무들로 구성
대통령의집 내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는 나무로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해 제주4.3사건이 재조명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유족회가 기증한 나무
고급 수종 기증 의향을 거절하던 대통령께서 유일하게 애착을 보여 기증받은 나무(진주 문산읍)
경복궁의 화계를 모방하여 설계한 뒤뜰 정원은 계절마다 보는 풍광이 다르도록 다채로운 꽃을 식재
만남의 광장은 봉하마을을 방문한 시민들이 "대통령님 나와주세요!" 를 외치면 밀짚모자를 쓴 대통령이 나와 시민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념 공간으로, 현재 야외영상관으로 조성하여 대통령이 손 흔들던 그날의 기억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시민들의 만남은 2008년 3월 1일부터 마지막 인사가 있던 12월 5일까지 총 153일, 횟수로는 369회에 이른다.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은 김해 봉화산 근린공원의 일부로써 국가보존 묘역인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중심으로 봉화산 기슭으로부터 봉하들판에 걸쳐 2015년 조성되었다.
생태문화공원은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잘 사는 농촌 마을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장소로 설계되었으며, ‘흙길 따라 풀, 꽃, 나무를 함께 보면서 새소리 벌레소리 들으면서 길을 걷는 삶, 그것이 국민들의 복지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살려 <사람사는 들녘>이라 이름 지었다.
연중무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44
1551-0225
‘시민(民)과 함께하는 쉼터’라는 뜻으로 공원 안내 및 프로그램 정보 등을 제공하는 방문자 센터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타원형 모양의 영지를 조성하여 수면에 투영된 봉화산과 부엉 이바위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자연에너지를 활용한 식물재배를 체험하는 학습 장소로 환경과 생태 등의 주제로 전시 및 행사, 자원봉사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
봉하마을 경작지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종자 파종에서 육묘, 이식, 수확에 이르는 재배의 전 과정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학습 장소
봉하들의 논에서 화포천에 이르는 다양한 습지 식물과 그에 따른 식생의 변화, 습지의 역할 등을 관찰, 체험할 수 있는 곳
봉화산, 봉하논들, 화포천으로 연결된 <숲-늪들>의 풍요롭고 다양한 교육, 놀이,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학습하는 체험교육의 공간
봉화산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쉼터가 있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2008년 노무현대통령의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조성되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가꿔지고 있는 곳
봉화산, 봉하 들판, 화포천을 비롯한 노무현 대통령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봉하마을 생태 환경 속에서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다지는 교육 연수 공간이다. 대통령의 오랜 벗이자 후원인이었던 故강금원 노무현재단 명예 이사장이 대통령과 함께 봉하마을을 일구었던 사람들과 손님들이 지낼 공간으로 건축하여 기증했다. 2018년 5월 1일, 기증자의 뜻을 살려 연수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정식 개원했다.
홈페이지 사전 예약 신청 필요
1551-0225
구슬을 가는 집
마옥당磨玉堂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고시 공부를 했던 곳이며, 대통령의 아버지 노판석 씨가 구슬玉을 갈고 닦듯磨 공부하라는 의미로 이름 지어준 아홉 평 남짓한 규모의 작은 토담집이다. 1965년에 터를 닦고 이듬해인 1966년에 대통령과 둘째 형 노건평 씨가 직접 지었다. 호박만 한 크기의 돌과 짚풀을 섞은 진흙으로 담을 쌓았고 소나무 뼈대에 갈대와 진흙을 발라 그 위에 볏짚 지붕을 얹었다. 부엌 한 칸, 공부방 한 칸으로 구성했는데, 공부방에는 책상과 의자, 침구, 달력 외에는 다른 살림을 두지 않았다. 부엌은 작은 아궁이를 놓고 장작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아궁이 위에 검게 그을린 벽을 긁어 아버지가 지어준 ‘마옥당’이란 이름을 새겨 넣었다.
청년 노무현의 꿈, 사랑, 성장이 담긴 곳
노무현 대통령은 1966년 2월,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근무조건과 처우에 문제가 있어 그만두고 사법고시 도전을 결심했다. 1966년 제7회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하였고, 1971년 군 제대 후 마옥당에 거주하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했다, 고시 공부 중 1973년에 결혼, 득남한 후 1975년 마침내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자 60명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다.
이후 마옥당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자연스레 집이 무너졌고 그 터만 남아 있었으나 2022년에 복원하고 지원시설을 마련했다.
이름 앞에 붙은 ‘봉화(烽火)’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왜적이 침입했을 때 부산 가덕도 천성보에서 처음 이를 알리는 봉화를 올리면 녹산, 김해를 이어 진영 봉화산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마애불, 정토원, 호미든 관음상, 사자바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골이 깊어서 대통령은 생전에 봉화산을 두고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변에 낙동강과 화포천, 들판 등 더 높은 산이 없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여러 골짜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자은(子恩)골’을 좋아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이곳에 데려가 “봉하제일경”이라며 자랑이 대단했다.
봉화산은 봉하마을의 아름다운 자연 명물 가운데 하나이자 대통령이 즐겨 걸은 산책코스. 대통령은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봉화산을 함께 걸으며 어린 시절과 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설명해 주곤 했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도 주변 40~50리가 모두 평지라 정상인 사자바위에 올라서 보면 꽤 높아 보입니다. 옛날 봉화(烽火)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사자바위 양옆으로 길게 뻗고 있는 학(鶴)의 모양을 하고 있어 건너편 뱀(산)이 화포천의 개구리(산)을 못 잡아먹게 견제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산이죠."
봉화산 숲길은 대통령 묘역에서 출발해 봉화산 주요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본산배수장 방향으로 내려온 뒤 둑길, 생태연못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에 도착하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길이는 5.3km이고,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대통령이 퇴임 뒤 고향 봉하마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화포천 청소. 사저가 미처 완성되기도 전이었는데, “봄을 그냥 보내면 1년을 그냥 보내는 것 같다”라며 머뭇거림 없이 바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은 자연스럽게 습지와 마을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과 행동으로 확대돼 봉하마을은 물론 인근 지역 생태와 환경 개선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화포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자연하천형 습지로 총 500만㎡에 이른다. 290여 종이 넘는 동식물과 멸종 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21.2km에 이르는 자연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겨울이면 멀리 중국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기러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종의 겨울 철새 수천 마리가 찾아온다.
화포천 습지길은 2011년 5월 14일,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맞춰 개장했다. 사자바위, 편백나무 숲길, 정토원 등 봉화산 곳곳을 오르는 '봉화산 숲길'과 비교해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코스여서 연로한 분들이나 어린이들이 쉽게 거닐 수 있다.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의 하나로, 전체 길이 21.2km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하천형 배후 습지다. 오염이 적어 다양한 물고기와 창포, 선버들 같은 습지 수생식물이 사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습지상태 보존에 관심이 많아 귀향 뒤 직접 화포천 정화활동에 참여하고 꾸준한 습지 연구를 통해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해진 화포천을 복구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화포천은 매년 겨울이면 기러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종의 철새 수천 마리가 찾아드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2012년 12월까지 김해시의 화포천 생태습지공원 조성 사업을 통해 생태탐방로(4.5km) 및 생태학습관(657㎡)을 완공할 예정이다.
농업회사법인 (주)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퇴임 후 귀향하여 '아름답고 살기 좋은 생태마을'을 만들고자 직접 설립한 영농법인입니다.
봉하장날’은 농업회사법인 (주)봉하마을이 만든 경남 친환경 로컬푸드 직매장의 브랜드입니다.
친환경생산자(가공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도·농 직거래의 매개고리입니다.
봉하마을과 인근 들녘의 유기농 쌀 제품을 중심으로 모든 친환경 생산품, 가공식품, 생활용품까지 확대하여 온라인쇼핑몰과 직거래 오프라인 매장 봉하장날에서 전시 및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역소비자에게는 신선하고 안전한 친환경 지역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제공하여 가족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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